얼마 전 우리 대법원은 ‘햄 제품’ 광고사진에 대한 판결에서 “햄 제품을 충실히 표현해 내기 위해 원고(사진작가)의 ‘사진기술’을 빌렸을 뿐이고… 제품에 어떠한 연출도 없어… 원고의 창작적 노력내지 개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저작물성을 부인하였고, 또 미 연방 대법원의 ‘오스카 와일드’사진과 관련한 Burrow-Giles 사건에서도 “촬영자 스스로 피사체의 포즈와 의상, 배경이 되는 휘장이나 기타 여러 가지 장식물, 조명의 방향과 세기 등을 ‘연출하였다면’ 저작물로 되기 위한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판시하고 있다(오승종·이해완, 저작권법(2005, 박영사), 82면).
   이 두 판결 요지를 보면 결국 ‘피사체에 어떠한 연출이 없이 다만, 충실하게 재현해 낸 것’이라면 창작성이 없다고 봐서 그 사진의 저작물성을 부인하고 있는 것 같다. 즉, 피사체에 대한 어떠한 연출이 사진저작물이 되기 위한 창작성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저작권법상 소재는 보호대상이 되지 않고, 사진저작물에 있어서 피사체는 곧 소재이며, 따라서 피사체는 그 자체가 저작물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저작권법상 보호대상이 되지 않는다. 설사 피사체에 어떤 연출을 가한다 해도 그로써 저작물이 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소재일 뿐으로써 마찬가지다. 이는 “표현을 보호”하는 저작권법의 본질상 당연하다.
   그렇다면 미 연방대법원이나 우리 대법원에서 저작물성을 부인한 이유로 든 ‘피사체에 대한 연출 여부’는 수긍하기 어렵다. 만약 이 판단 이유를 수긍한다면 피사체에 인위적 연출이 불가능한 자연물, 예를 들어 산이나 바다, 꽃 등의 피사체를 그대로 촬영한 사진의 경우 저작물성이 부인되어야 하는데 이를 수긍할 수 있겠는가? 산이나 바다에 일출이 장관이라 해도, 또 석양이 곱게 물든다 해도, 꽃이 피어나고 이슬이 맺혔다 해도 이는 자연현상에 의한 피사체 본연의 모습일 뿐 촬영자의 연출이 아니므로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진에 있어서 ‘기술’이라는 것은 ‘단지 기계적인 솜씨’가 아니라 오랜 시간 수많은 실습을 통해 체득한 피사체의 선택, 구도의 설정, 카메라의 종류와 앵글의 결정, 셔터 속도와 셔터 작동 순간, 그리고 빛의 종류와 각도 및 양을 결정하고 그 결과물을 예측할 수 있는 안목과 감각 등으로서 모두가 인간의 정신적 활동 결과이다. 다른 말로는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대법원이 ‘다만 사진기술을 제공한 것일 뿐’이라며 원고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제품사진, 즉, 광고사진 촬영에 종사하면서 체득한 전문성을 단지 ‘기계적’인 솜씨 정도로 판단한 것과 그러한 솜씨로 ‘오직 제품을 충실하게 표현해 낸 것’이라면서 저작물성을 부인하는 이유로 삼은 것도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저작권법상 저작물에 대하여는 ‘예술성의 높고 낮음’을 보호의 요건으로 하지 않고 ‘최소한의 창작성’만을 요구한다고 해석하고 있으며, 저작권법에서 사진을 저작물로 예시하고 있고 예술성의 높고 낮음이나 창작성의 정도를 사진에 대해서만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는 이상 사진저작물에 대해서도 다른 저작물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창작성만 요구되는 것’은 같다고 볼 것이다.
   그런데 다른 저작물도 마찬가지지만 사진작가가 그 사진을 촬영함에 있어 최소한의 창작적 노력을 했는지를 결과물인 사진에서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는 매우 어렵다. 물론 다른 저작물의 경우 “누가 해도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타인의 저작물을 베낀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창작성이 있다”는 해석 기준을 적용할 수 있지만, 사진의 경우 기본적으로 소재인 피사체를 기계장치에 의해 그대로 재현해 내는 특성상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사진에 있어서는 그 사진이 단순히 기계장치에 의해 기계적으로 촬영되지 않고, 저작자인 촬영자의 사상과 감정이 개재되어 있는가를 최소한의 창작성 요건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모든 사진은 그것이 증명사진이든 제품사진이든 기계인 사진기를 이용하여 피사체를 평면적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지만 인간이 직접 촬영하는 경우에는 피사체를 선택하고, 구도를 설정하고, 카메라의 앵글, 빛의 방향과 빛의 양을 조절하고, 셔터 스피드를 정하고, 언제 셔터를 눌러야 할지를 거의 전적으로 촬영자인 인간이 스스로 결정한다. 즉, 모든 사진은 촬영자인 인간의 정신활동 결과에 의한 표현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촬영자인 인간이 피사체를 스스로 선택하고, 구도를 설정하고, 카메라 앵글, 빛의 방향과 양을 조절하고, 셔터의 스피드를 결정하고, 셔터를 작동하는 것, 이것이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촬영자 자신만의 개성과 창작적 노력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것이 저작권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창작성’이 아니겠는가? 이는 아무리 유사하게 보이는 사진이라 해도 전문가적 시각으로 살펴보면 촬영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사진이 각기 다른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저작물과 구분되는 사진만이 가지는 특성이 있다. 다른 저작물의 경우 “기왕의 저작물에 접근했고, 표현이 같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할 경우” 이는 새로운 저작물이 되기보다는 복제물이 되고 대부분 저작권 침해가 될 것이다. 따라서 기왕의 저작물에 접근하여 인지한 상태에서는 허락을 얻어 그 저작물을 이용하든지 아니면 전혀 다른 저작물을 스스로 저작해서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진의 경우에는 아무리 기왕의 사진저작물에 접근했다 하더라도, 또 동일한 피사체라 하더라도, 또 동일한 거리, 각도, 동일한 조명, 동일한 셔터 속도 등 모든 조건이 똑 같도록 촬영한다 하더라도, 인간이 스스로 다시 촬영하기만 하면 별도의 저작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모든 사진에 무조건 저작물성을 인정해도 새로운 사진의 창작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저작물은 사진에 담긴 피사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피사체를 촬영함에 있어 촬영자의 개성 및 창작성에 기인한 결과로서 표현(사진)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사진에 대하여 그 창작성 여부나 정도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결과로서 작성된 사진은 저작권법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창작성은 있다고 할 수도 있으므로 인간이 촬영하였다면 평면적 저작물을 그대로 촬영(복제)하는 것이 아닌 한 그 모든 사진에 대하여 저작물성을 인정함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또한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가장 큰 의미는 그 저작물의 이용가치이다. 이용가치가 큰 저작물일수록 보호의 의미가 크며, 이용가치가 전혀 없다면 사실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호기간이 사후 100년이라 한들 아무도 이용할 가치가 없다면 그 보호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진저작물성을 부인하고 싶은 정도의 사진들이라면 아마도 그 이용가치가 상당히 낮다고 할 수도 있다. 아마추어가 촬영한 타인의 증명사진이나 제품사진을 누가 그렇게 이용할 가치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래도 이용하고자 한다면 허락을 얻거나, 그것이 싫다면 직접 촬영해서 사용하면 된다. 직접 촬영함에 있어 저작권법상으로는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타인이 촬영한 사진을 이용하면서 왜 ‘저작물성이 있느니 없느니’를 따진다는 말인가?
   아무리 예술성이 낮고 하찮게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이 땀 흘려 이루어 놓은 결과를 거저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작권문화 2005. 10.호/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 등록팀장 김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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