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해주세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한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은 술집에서 어깨를 부딪혔다는 사소한 시비에서 비롯됐다. 하찮은 이유 때문에 주먹이 오가고 이 과정에서 입은 피해를 개인적으로 응징하기 위해 보복폭행이 이뤄지면서 이번 사건은 전국민적인 '대형사건'으로 비화됐다.

가해자라는 김 회장의 차남이나 피해자라는 술집 종업원들은 자신들이 벌였던 사소한 주먹다짐이 이처럼 큰 물의를 빚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 조그만한 폭력이 몰고 올 결과에 대해 둔감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폭력에 둔감한 세태가 '무소불위' 재벌가 사람들이나 사회 근저에 있는 술집 종업원들에게만 국한돼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돼 있다는 점이다.

CBS는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계기로 한국사회에 만연한 '폭력 무감 실태'를 나흘간 보도한다.
지난 3일 새벽 서울시내 한 경찰서 폭력팀 사무실. 술에 취한 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30대 회사원이 막무가내로 '풀어달라'며 1시간째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 회사원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종업원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패를 부리다 경찰서 신세를 진 것.

회사원 바로 옆에는 30대 주부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나이트 클럽에서 술을 마시다가 옆 테이블 남성과 시비가 붙어 주먹다짐까지 벌여 역시 경찰서까지 오게 됐다.

하지만 '폭력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이 주부의 태도에는 긴장감이 전혀 없다. 담당 경찰에게 콧소리를 내며 "이거 빨간 줄 그어지는 것 아니냐, 애들도 있는데"라며 절박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선처만 호소하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몸을 부딪혔다는 두 사람이 조사를 받고 있었다. 경찰서까지 와서야 두 사람은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날 폭력팀에서 조사받은 사람은 모두 14명. 대부분이 사소한 시비 끝에 주먹을 앞세운 '쌍피'사건이다. 가해자가 곧 피해자요, 피해자가 가해자인 사건이다.

하룻밤에 수 십건의 사소한 폭행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경찰은 피곤할 뿐이다. 폭력팀 관계자는 "시민들이 대부분 폭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폭력사건으로 인해 전과가 남을 수도 있고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김 회장 사건처럼 큰 사건으로 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서 폭력사건이 빈번한 것은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5년 한해 전국에서 발생한 5대 범죄(강도,절도,폭력,살인,강간) 가운데 폭력범죄가 56%를 차지했다. 강력사건 두 건 가운데 한 건이 폭력사건인 셈이다.

외국과 비교해보더라도 한국의 폭력사건 비율은 월등히 높다. 지난 2005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발간한 '세계 주요도시의 범죄발생 추세 비교분석' 연구총서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인구 10만명당 폭력관련 범죄(폭행죄,상해죄,폭력행위 처벌법 위반을 합친 건수) 발생율이 한국은 584건으로 이웃 일본의 46건보다 무려 8배나 높았다. 극우주의자들의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독일도 567건으로 한국보다 적다.

2000년을 기준으로 하면 한국의 폭력범죄 발생율은 679건으로 일본의 34건은 물론 독일의 474건이나 영국의 627건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인 절차에 따라서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바로 즉각적으로 해결하려는 욕구가 상당히 강하다"며 "그러다보면 결국 개인들 간에 폭력을 직접 행사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을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부나 법제도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불신감도 이같은 직접 응징 현상을 부채질한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살다보면 주먹질도 할 수 있지'라든가 '술 먹으면 그럴 수 있지'라는 폭력과 음주에 대한 관대함이 폭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CBS사회부 이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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